1.미국땅에 첫 발을 대딛다

여태껏 한번도 외국을 나가본 적 없는 나에게 시카고 공항은 낯선 오지나 다름없었다. 비행기 안을 꽉 채웠던 많은 한국 사람들은 시카고에 내리자마자 다른 미국인들에 섞여 보이지 않았고, 그제서야 나는 여기가 미국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칼라마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면서 그동안 미국을 간다는 흥분감 아래에 눌려있던 많은 걱정들과 불안함이 나를 엄습해왔고 앞으로의 미국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공항에 나를 마중나와 있는 호스트 가족들을 봤을 때 그러한 불안감들은 절정에 달하여, 나름 스스로 준비해갔던 자기 소갯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앞으로 같이 지내게 될, 영어를 곧잘 하는 다른 브라질 교환학생때문에 나는 더욱더 위축되었다. 대화를 나눌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개를 끄덕이거나 “Yes, No”같은 정말 간단한 단어만을 말하는 것이었다. 타지에서는 자신감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왔지만, 간단한 표현도 전자 사전을 찾아가며 힘들게 말했던 나에겐 자신감 따윈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미국에 오면 자연스레 영어가 몸에 와닿겠지 하는 생각은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한국에서 흔히 봐왔던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시키는 것도 왜 그렇게 떨리던지, 지금도 가끔 회상에 잠길때면 그 때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혼자 웃곤 한다.
비록 영어를 못했다고는 하나, 그러한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캐쥬얼한 대화를 알아듣기 위해 정자세로 허리를 꼿꼿히 하고 경청했던 내 자신이 신기해지기도 한다. 간단한 회화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생활에는 많은 제약이 따랐다. 미국만큼 대화를 중요하시는 문화도 없는 것 같은데, 나는 미국 문화에 자연스레 동화되기 위한 기본적인 요건마저도 갖추고 있지 않았던 것 이다. 아직 학교가 개학을 하지 않았던 탓에 미국에서의 첫 주는 나름 진부했다. 기껏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같은 집에서 사는 브라질 교환학생 “조”에 불과했고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아 애를 많이 먹었다. 둘다 시차적응도 되지 않아 오후가 되서야 일어난 뒤 할 수 있는것이라고는 비디오 게임이나 축구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영어를 하나도 못했던 탓에 조는 나를 많이 도와주었고 그러면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1년동안 같은 방을 쓰면서 약간의 다툼도 없지않아 있었지만 미국 문화에 적응하면서 큰 힘이 된것 같다.
전에도 교환학생들을 받아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호스트 가족들은 내가 알아듣기 쉽도록 일부로 말을 더 천천히 해주었다. 한 두 단어를 알아듣고 문장 전체 뜻을 짐작하는 단계에 불과했지만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내가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미국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한 지금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사실 내 첫번째 호스트 가족은 미국 사람들이 흔히들 “Red Neck”이라 부르는 전형적인 미국 촌사람들이었다. 인스턴트 식품을 즐겨먹고 그때 한창 한국에서 유행하던 올가닉 음식이니 친환경 재배 식품이니 하는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낡고 큰 트럭을 운전하고, 블루칼라 직업에 종사하며 여가시간에 Nascar라 불리는 자동차경주를 즐겨보는 그러한 가정이었다.문화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달랐던 생활패턴때문에 여러번 마찰도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 가족들이 보고 싶을 때가 많다. 너무도 작은 도시라 자동차가 없는 나에겐 방문 한번하기가 무척 힘들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꼭 한번 들러서 안부라도 물어야 겠다. 새삼 이렇게 그 가족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2.미국에서의 첫생활이 펼쳐지다

내가 살 도시는 미시간주에 있는 Coloma라는 인구 만명의 전형적인 미국 소도시였다. 모든 것 하나하나가 새롭긴 했지만 서울 한복판에 평생을 살았던 나로써는 미국의 전형적인 Country 생활패턴에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11시가 채 되지 않아 잠자리에 들고, 아직도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 모뎀을 사용하며 식료품점을 가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15분 이상을 가야한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도 또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했다. 선진국중의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아직도 손 안에 쥘 수 없이 큰 핸드폰을 쓰고 모뎀을 사용한다니!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만이 지니고 있는 면모에 입을 다물 수 없을 때가 더 많아졌다. 아파트 단지 내의 작은 공원보다 넓은 집 마당에 한번 놀랐으며 웬만한 소규모 아파트 단지보다 큰 고등학교의 큰 규모에 다시 한번 놀랐다. 총 학생수가 600명이 채 안되었음에도 미식축구장, 축구 연습장, 야구장, 테니스장, 체육관, 헬스클럽, 소프트볼 연습장,트랙 필드등을 고루 갖춘 시설에는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미국에 온지 이제 어연 4년이 넘어가고 첫번째 고등학교보다 시설이 훨씬 좋은 장소들을 많이 봤지만 미국에 처음 와서 받은 그 신선한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미국에 온지 일주일만에 시작되는 학교 생활은 나에겐 그야말로 커다란 변화이자 도전이었다. 미국 소도시의 특성상 학교엔 한국인은 커녕 아시아계 미국인조차 없었고 (후에 한명의 한국 교환학생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학교 건물안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할지 아니면 어떻게 같은 또래 학생들에서 말을 걸어야 될지등 오만가지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친구들과의 교우관계는 둘째 치고 수업을 하나도 알아 들을 수 없어서 수업시간동안 집중하는 것 조차도 힘겨웠다.  졸지에 나는 선생님께도 수업시간에 딴 짓하고 조는 외국인 학생으로 낙인 찍히고 만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미국에 온 처음 3-4개월동안은 생각보다 많은 기억이 없다. 오직 영어 하나때문에 다른 것에는 신경조차 쓰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내가 무의식중에 범한 웃지 못할 많은 실수들과 심리적 압박 때문에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리라.


3.자신감을 갖고 생활하라

고등학교에서 첫 주동안 나는 내 인생에서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너무나도 많은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태어나서 흑인과 남미계 학생들을 처음 대했고, 학생들이 몰고 온 자동차로 빼꼭히 찬 학교 주차장을 처음 봤으며,  학교 내에 개인 라커를 가지는 것도 처음이었다. 라커의 비밀번호를 맞출 줄 몰라서 앞에 서서 10분간을 쩔쩔매기도 했고, 한국 고등학교와는 달리 수업마다 교실을 이동하는 것이 익숙치 않아 학교안을 빙빙 돌기도 일쑤였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거나 영어로 번역할 수 없는 표현이 나오면 사전을 찾아가며 적응하려는 심산으로 나 자신을 위로도 해봤지만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두꺼운 교과서를 펼치고 모르는 단어가 한 문장에 서너개씩 나올때의 그 상실감은 정말 말로 표현 불가능이다. 그나마 나름 자신있었던 독해 분야마저 처절함을 맛본 순간이었다. 미국 고등학교의 수업이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영어로만 진행되는 수업에 나는 정말로 어쩔 줄을 몰랐다. 한국 학교에서는 스스럼없이 발표를 하고 친구들과 떠들어 왔기에 수업중에 누가 나에게 말이라도 걸면 어쩌나, 아니면 선생님이 나한테 질문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드는 나 자신에게 나름 놀란 것도 사실이다. 영어를 배우는 것도 중요했지만 잃어버린 자신감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너무나도 다른 문화, 장소, 사람, 그리고 환경에 한꺼번에 직면해야 했기에 어떻게 적응을 해야하는지 터득하는데 무려 5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것이다.
교환학생 출신으로 미국 대학을 진학한 까닭에 종종 미국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달라는 부탁을 가끔 받는다. 타지 생활에 자신감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나는 절대로 “예비 교환 학생 여러분, 자신감을 가지고 생활하면서 적응하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고? 자신감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자신감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혼자서 여러 상황에 부딪히고 배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기는 것이다. 종종 인터넷을 돌아다닐 때면 미국 유학 생활에 관하여 불평하고 어떻게 하면 더 당당하게 생활할 수 있는지 묻는 글들을 보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은 많은 실수를 해보고 느끼는 방법이외에는 없는 것 같다. 그러한 실수들을 얼굴을 붉히며 피하려 하지말고 넉살 좋게 웃어 넘기면서 하나씩 배워나가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또한, 그 때 잠깐의 창피함은 나중에 잊혀질테고 그렇게 쌓인 웃지 못할 경험들은 나중에 좋은 얘깃거리가 될 것이다. 4년이 넘는 미국 생활에 영어가 많이 향상된 탓도 있겠지만, 난 미국 친구들과 이야기 할때면 대화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는 편이다. 미국 친구들은 한번도 해보지 못한  재미난 실수 경험담들을 쏟아내는 교환학생들만큼 좋은 소잿거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찾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