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운동은 미국 적응을 돕는다.

되지 아니하면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너무 한가지만  매달리지 말고 가능한 여러가지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아보라는 뜻인데 내 유학 초기 생활에 크나큰 교훈이었던 것 같다. 수업도 못 알아듣고 대화도 유창하게 이어갈 수 없었을 때 내 뇌리를 스친 방법은 운동이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방과 후 활동이 활발하고 학교에서도 장려하는 편이다. 많은 학생들이 스포츠를 포함한 방과 후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고 학교의 연장선상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마침 학교 축구팀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나와 조는 다른 축구팀 멤버들과 같이 방과 후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수업 시간 외라고 영어가 더 잘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함께 뛰고 땀을 흘리면서 더 많은 교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때만 해도 미국 친구집에 가거나  같이 차를 타고 놀러가는 것은 생각조차 못해본 일이었지만 학교 축구팀을 계기로 친구를 한명 한명 사귀어 나갈수 있었다. 같은 팀 친구들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와의 경기를 보러 온 우리학교 학생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미국에서 4년 동안 유학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이지만 미국만큼 다양한 스포츠가 공존하고 또 장려되는 곳도 없는 것 같다. 방과 후에 축구을 하면서 친구들을 사귀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규칙적인 운동덕택에 자칫 기름기 있는 미국식단으로 인해 올수 있는 갑작스런 체중증가도 예방할 수 있었다. 학교가 공부에 그렇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데다가 훌륭한 시설까지 갖추고 있으니 마음껏 운동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처음으로 잔디구장에서 축구를 하고 유니폼을 입고 학교를 대표할 수 있던 기회에 나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자연스레 학교애도 생겨나게 되었고 내 학교 생활에도 더 애착을 가질 수 있는 계기였다. 어느 단체내에서 어떤 역활을 맡고 책임감을 가진다는 것은 구성원들이 임무를 더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 또한 학업과는 관련없는 학교 축구팀을 통해 학교 자체에 대한 애정을 키워갔고 이 학교애는 내가 학교 생활에 더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많은 학교 클럽에 가입하거나 행사 및 풋볼 경기에 가려고 노력했고 이러한 와중에 미국 친구들과 자연스레 교제할 수 있는 방법들도 터득한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나 자신이 속한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다.
나는 내가 현재 다니고 있는 Indiana University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며 나로 인해 학교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졸업 후 사회에 진출했을 때, 다른 학교 출신들을 아우를 수 있는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나에게 종종 자극을 주는 것도 어쩌면 학교애에서 나왔는지도 모른다.


5.호스트패밀리에 대한 추억

물론 내 유학 초창기가 운동이라는 하나의 터닝 포인트로 인해 순탄하게 진행됬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영어 회화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고 호스트 가족과의 마찰 또한 있었다. 나와 조 모두 대도시에서 온 탓인지 밤 11시 이전에 자는 것에 익숙치 않았고 미국 시골 생활패턴에 쉽게 무료해졌다. 취미로 채소를 가꾼다던가 고물 자동차를 수리하는 것은 우리가 이제껏 살아왔던 도시 생활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호스트 가족들은 우리가 한 가족의 일원으로써 그러한 활동에 참여하길 원했다. 싫은 내색은 안했지만 틈만 나면 나와 조는 둘이서만 어울리기 일쑤였고 모두가 하나가 되길 원했던 호스트 가족들에게는 밉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둘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 가족들과의 문제점을 코디네이터에게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어서 생긴 문제점도 있었다.
내가 수업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어서 집에 와서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했는데, 호스트들은 내가 왜 밤 늦게까지 이해도 되지 않는 교과서를 가지고 씨름을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낙제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호스트와 A가 아니면 안되는 나는 의견을 좁히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방과 후 활동을 하고 집에 오면 어느덧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고, 식사 후에는 거의 의무적으로 가족들과 TV를 시청해야 했다.
후에 알았지만 우리 가족들은 모두 함께 TV를 보는 것이 가족 여가의 하나였던 것이다. TV를 보면서 영어에 더 많이 노출될 수는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내가 숙제나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수업 시간에 진도 나간 부분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했으니 시간이 정말 많이 소비될 수 밖에 없었다. 같은 방을 썻던 탓에, 하는 수 없이 조에게 양해를 구하고 새벽까지 몰래 방에서 밀린 숙제들을 해야 했다. 지금와서 문득 생각난 것이지만, 아마 그 때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공부를 한 때가 아닌가 싶다. 그 때는 새벽까지 몰래 공부하는 것 이외에는 따로 방도가 없어 했던 것일테지만, 미국에 온 후로 점점 자기 자신에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을까?


6. 나도 놀란 미국역사 과목 성적

노력해도 오르지 않는 시험 성적에 화나고 포기하고 싶을때도 있었지만 약 6주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동안 노력의 결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과서를 다 읽으며 전반적인 내용을 학습한 덕택에 수업시간에 보다 더 많은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수학을 제외한 다른 과목에서도 서서히 성적이 올랐다. 2차 함수 그래프도 제대로 그리지 못했던 다른 미국 친구들보다 생물이나 미국 역사 성적이 잘 나오질 않아 맘고생이 심했었는데 차차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온지 약 4-5개월이나 지나서 생긴 일이었다. 가을 시즌동안 축구를 하면서 친구들을 사귀고, 밤낮 영어생각만 하며 한마디라도 더 해보려고 노력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끝에 온 결과였다. 큰 대회 입상이나 학교 수석과 비교했을때 별볼일 없는 작은 일이었지만 반에서 가장 높은 미국 역사 시험지를 받고 쉬는 시간까지 자리를 뜰 줄 몰랐던 나 자신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5개월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여러가지들을 경험해보면서 어느정도 미국생활에 적응도 했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다. 이제 더이상 맥도날드에서 계산하면서 우물쭈물거리지 않았고 볼링이나 당구등을 배우면서 친구들과 좀더 가깝게 어울릴 수 있었다. 자신의 Comfort zone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직접 부딪혀보는 습관은 내가 후에 대학에 갔을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학업 외에도 대학에서만 느껴볼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경험해보고 다양한 클럽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