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에피소드>

  2009년 1월 17일 토요일,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이 날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를 타는 날이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항상 중요한 날에 실수를 한다. 이 날도 어김없이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비행기 우편물을 부쳐야 하는데 유학생 서류(I-20)를 집에 놓고 온 것이다. 이게 없으면 미국에 입국이 안 되기 때문에 출국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비행기를 놓치면 다음 비행기는 이틀 뒤에나 있었고, 인천공항에서 강동구에 있는 우리집까지는 편도 1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였다. 그 때 시간이 아침 8시 25분, 비행기 출발시간은 10시 5분. 그것도 20~30분 일찍 수속이 끝나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그 시간은 출근시간 무렵이 아닌가. 도저히 왕복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퀵 서비스를 생각해 봤지만 고속도로라 오토바이가 달릴 수 없다고 했다. 아빠의 운전 실력이 발휘 되어야 할 때였다. 외할머니를 비롯한 온 가족은 발을 동동거리며 마음을 졸이면서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난 비행기를 놓치지만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다행히 서류는 비행기 출발 15분을 남겨놓고 도착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아빠는 그 때 시속 190Km의 속도로 달리셨다고 한다. 집에 돌아가려고 할 땐 바퀴에 펑크가 나 있었다고. 그래도 시간 안에 비행장에 도착한 것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 서류를 들고 아파트 입구까지 나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하셨다. 아빠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짐 수송이 끝난 상태라, 큰 가방 하나는 실을 수 없었다(덕분에 미국에서 짐을 찾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쨌든 이젠 내 달리기 실력이 필요할 때다. 급하게 이동하느라 가족들과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다. 주차하러간 아빠의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마치 지각한 날 학교에 뛰어가듯이 난 그렇게 비행기에 타야 했다. 아쉬웠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일은 정말 기적이었다. 짐 검사하는 일, 여권 확인 하는 일 등을 후다닥 끝내고, 거의 딱 맞춰서 비행기에 탑승했다. 물론 그 후에, 눈 치우는 일 때문에 비행기가 조금 연장이 돼서 허탈하긴 했으나...

  후, 이젠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미국으로 간다. 너무 설레었고, 지금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하면 감사해서 눈물이 날 것 만도 같았다. 12시간이 넘는 장시간 비행이었다. 하필 자리가 중간이고, 옆에 외국인이 앉아 있어서 뭔가 갇혀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영화도 보고, 가져온 책도 읽고, 멍하니 앞으로 있을 일을 상상해 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잠도 더 이상 오지 않고, 엉덩이가 저려 올 때쯤 곧 착륙한다는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아틀란타 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내가 Family Care 서비스를 신청해 놨고, 찾을 짐도 없었기 때문에 입국하는 일은 쉽게 끝났다. 공항이 너무 커서 혼자 있었더라면 길을 잃어버렸을 것만 같다.

  다음 비행기 탑승구 앞에 도착하고 나서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혼자 햄버거도 사 먹고, 부모님께, 호스트 맘한테도 전화했다. 햄버거를 살 때는, 미국 문화를 잘 몰라서 실수를 했는데, 미국에서 무언가를 살 때는 가격표에 나온 가격 이상을 준비해 놔야 한다. 사고 나서 영수증을 보니, 세금이 조금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선 가격표에 세금을 포함하지 않나 보다. 첫 날부터 좋은 것을 배웠다. 그리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시차에 적응하기 위해 햄버거를 먹고 조금 기다리니 다음 비행기가 왔다. 이 비행기는 미국 내를 다니는 비행기라 크기가 아주 작았다. 작은 비행기를 타고 또 다시 2시간 정도를 더 날았다. 마냥 신기해서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이젠 주변엔 외국 사람들밖엔 없다. 곧 호스트 가족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교환학생이다. 비행기가 큰 소리를 내며 착륙했다. 그리고 나는 짐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지역 내 비행기라 검사도 안하고, 작은 공항이라 얼마 안 가 쉽게 출구를 볼 수 있었다. 밖엔 호스트 맘 Heidi, 동생 Andrea, 교환학생을 담당하는 학교 선생님 Mr. Pursell이 웃으며 나를 반긴다. 휴 이제 긴 여행이 다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