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뉴욕 타임스퀘어에서부터 전해지는 생방송 장면을 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두꺼운 외투를 입고, 목도리를 둘러매고서, 광장에 모여 있다. 큰 전광판에는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30초. 집에서 파티를 하던 식구들도 이젠 tv앞에 모여 같이 화면을 보고 있다. 마치 역사의 한 순간을 지나고 있는 듯하다. 왠지 막 설렌다. 15초.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전파를 타고 들린다. 10초. 어느 나라에서나 10초부터 카운트다운을 하나보다. 한 자리 수들이라 세기가 편해서 그런가? 모르겠다. 그냥 나도 동참하기로 했다. 남은 시간은 5초. Five, four, three, two, one. Yeah! 수십 개 폭죽들이 뉴욕 밤하늘을 밝힌다. 오늘은 매년 오지만 항상 반가운 그 날. 1월 1일, 2010년이다.

바로 전날, 그러니 2009년의 마지막 날 밤에는 친구 집에서 파티를 했다. 사실 그 날에, 1년 동안 공립학교에 다니던 한 한국인 여학생이 이번 학기부터 우리 학교로 온다고 해서, 그 아이를 만나려고 갔었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같이 수업 듣게 될 한국인 친구들의 얼굴 정도는 알면 좋을 것 같아서 나를 비롯한 몇몇 아이들을 자기 집에 초대했다. 학교에 아는 수학 선생님이 그 친구의 호스트 어머니셨는데, 그 날 한국인 친구들이 집에 모여 놀다가는 것을 기분 좋게 허락하셨다.

점심시간쯤에 찾아가니, 우릴 위해 직접 만든 잡채가 준비돼 있었다. 만들기 까다로운 한국 음식 중 하나라 알고 있었는데, 맛이 참 좋아서 놀랐다. 그 집 식구들과도 같이 먹었는데, 다들 그 ‘한국 스파게티’를 즐겨 드셨다. 맛있게 먹고 나서, 같이 놀았다. 처음에는 조금 서먹서먹했지만, 집에 있는 'Wii'게임들을 하고, 보드게임을 하면서 조금씩 말이 트였다. 그 날 만난 그 아이는 유타 주에서 공립학교를 다니다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처음 만난 친구였지만, 같은 교환학생으로서, 어떻게 보면 똑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아이라,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특히, 살짝 설레는 말투로 다니고 있는 학교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을 때는, 내가 학교에 들어서기 전, 떨리고 불안했던 마음들이 떠올랐다.

시간이 가면서, 집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 한해의 마지막 순간을 가족, 친척들과 함께하기 위해, 그 집 식구들이 가족 파티를 열었기 때문이다. 식탁에는 손님들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도록 여러 음식들과 갖가지 종류의 간식들이 놓였다. 거실에 있던 화덕에는 불이 지펴져 있었고, 옆에서는 비디오게임을 하는 선수들의 열기로 더욱 뜨거웠다. 그렇게 2009년의 마지막 밤은 빠르고, 떠들썩하게 흘러갔다.

밤 11시 쯤, 아빠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때 한국은 이미 다음날 오후 2시였다.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하지 않았던 12월 31일을 어떻게 보냈는지의 안부전화였다. 주변이 어수선했고, 오래 통화를 할 수 없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말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는 이제 내가 18살이 되었다. 1년씩 더 늙은 내 친구들은 이제 19살, 그리고 수험생이라는 호칭을 달게 되었다. 한 해만 더 지나면 그 녀석들이 20대가 된다니, 믿겨지지가 않는다. 시작할 때는 끝이 없을 줄 알았던 2009년이 끝이 났다. 또, 평생 갈 줄 알았던 10대로서의 나도, 어느덧 끝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시간이 빨리 간다. 흐르는 시간에 맞추어, 나도 성숙해져야 한다. 다가올 시간에 대비해, 준비되어야 한다.

통화를 마치고 거실로 가니, tv가 틀어져있었다. 비디오게임을 마친 식구들이 거실 소파에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tv화면에서는 타임스퀘어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미국은 시간대가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신년 행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었는데, 아마 뉴욕이 속한 동부시간대는 1시간이 늦지만 중부시간에 맞추어 새해를 맞는 것 같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 자정이 되었고, 모여 있던 사람들과 한 해의 마지막 10초를 같이 세었다. 모두들 서로에게 “Happy New Year"를 외쳤고, 2010년을 맞았다. 새로운 한 해에는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 Jan 15,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