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긴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 미국으로 온 지 거의 14개월 만에 나의 부모님을 다시 보았기에 나에게는 특별하고 기억에 남는 한 주간이었고, 지금 그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부모님께서 미국을 방문하신 이유는 다름이 아닌 내 호스트 엄마의 재혼 때문이었다. 내가 이 집의 아들로 들어왔을 때부터 이혼을 하셔서 혼자 지내시다가, 교회에서 만나 같이 교제하시던 한 남자분과 다시 결혼을 하게 되신 것이었다. 둘은 3월 5일에 집 근처에 있는 한 맨션에서 결혼식을 올리셨고, 그 식에 참석하기 위해 내 부모님은 일주일 전 미국행 비행기를 타셨다. 우리는 교환학생 생활 중에 호스트 부모님이 재혼하시는 경우는 내가 처음일 거라며 농담 섞인 말을 했다. 미국에 한 번은 방문하실 계획이 있으셨던 부모님은 덕분에 좋은 여행을 하셨고, 두 가족이 직접 만나 이야기 할 수 있어 더욱 좋은 시간이었다.

아빠가 미국 여행이 처음이신 엄마를 위해 미국의 큰 도시를 먼저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셔서, 우린 집에서 멀지 않은 시카고로 가기로 했다. 작년 여름에 가본 기억이 있어서, 나는 27일 아침 기차를 타고 먼저 가 약속한 호텔에서 기다렸고, 조금 늦게 도착하신 부모님과 호텔 앞에서 정든 인사를 나누었다. 너무나 오랜만이라 혹시 얼굴을 못 알아보지나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나와 똑 닮은 아빠의 얼굴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신 엄마의 얼굴은 멀리서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날 저녁은 시카고에서 유명한 피자집, Gino에 들러, 오랜만에 부모님과 같이 식사를 했다.  

그 다음날은 주일이었다.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에 가보고 싶었던 우리는, 조금 먼 거리에 있었던 한 교회를 찾았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한 권사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으셨다. 큰 건물에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먼 땅 미국에서 한국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주님을 찬양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나도 미국에 오고 나서 우리말 설교를 듣기는 처음이었는데, 괜히 조금 더 경건해졌고, 마음도 새로워졌다. 예배 후에는 점심식사도 대접받아, 왠지 한국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날 저녁은 조금 추웠지만, 부모님과 같이 쇼핑을 했고, 시카고의 시내 산책을 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월요일에는 한국인 투어가이드를 불러서 시내투어를 했다. 하루 종일 시카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여기에 다 적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것을 보았다. 서울의 코엑스 아쿠아리움 보다는 못했지만 시카고에서 유명하다던 수족관,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에 배경이 되었던 자연사 박물관, 미국 10대 대학 중에 하나인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 현 미국 대통령 오바마(Obama)의 생가 등. 점심으로는 한국분이 직접 하시는 설렁탕집에 가서 허기진 배도 채웠다. 작은 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내 카메라에도 추억이 될 많은 사진들이 쌓여 있었다.

기왕 부모님이 미국까지 오셨으니, 우리는 시간을 내어 대학 방문을 하기로 했다.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워싱턴 대학(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 Wash U)와 그 근처에 있는 세인트루이스 대학(St. Louis University : SLU)을 방문했다. 참고로 세인트루이스는 미주리 주의 주도이고, 일리노이 주에 있는 시카고와는 멀지 않다. 그래서 3월 2일 아침,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차를 한 대 빌렸다. 처음 목적지인 Wash U 까지는 약 5시간 거리였고, 시간에 맞춰가기 위해 우리는 조금 ‘빨리’ 달려야했다.^^ 자신을 ‘Good Driver’라고 자부하시던 아버지께서는 결국 단속에 걸렸지만, 바로 앞에 있던 차가 먼저 걸리는 바람에 아주 운이 좋게 주의만 받고 끝났다.

이틀에 거쳐 Wash U와 SLU를 방문했다. 대학 방문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적도록 하고, 일단은 다음 코스로 넘어가자.

세인트루이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서둘러 캔자스시티로 향했다. 밖에는 넓은 밭이나 농장 따위의 지루한 광경뿐이었고, 또 다시 장시간 운전을 해 집에 도착했다. 사실 내가 내비게이션에 목적지 입력을 잘못해 시간이 지연된 해프닝도 있었지만, 일주일 동안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을 글로 적기에는 힘들 것 같아, 생략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  

그 다음 우린 시내에 나가서 쇼핑을 했고, 한국 마트에 찾아가서 먹을 음식도 많이 샀다. 5일에는 교회와 학교를 방문했는데, 선생님 몇 분을 뵈었고, 점심시간이 돼서는 학교 급식을 받아서 친구들과 같이 식사도 했다. 지금까지는 말로만 전해드렸던 모든 것들을 부모님께 직접 소개시켜 드릴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두 분도 이 곳 학교 환경에 만족해하는 눈치셨다. 좋은 아들을 둬서 처음으로 미국여행을 하셨다며, 어머니께서는 농담 섞인 말투로 고마워하셨다.

결혼식 얘기를 잠깐 하고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식이 있기 하루 전, 가족들과 친한 이웃 몇몇을 초대해 근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도 맛있었지만, 친척 어른들이 신랑신부를 위해 준비하신 코믹 프레젠테이션(?)은 테이블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렇게 떠들썩한 식사를 하고 나서, 그 다음날에는 결혼식이 있었다. 재혼식이다 보니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아빠와 나는 양복을 입고, 엄마는 한국에서 가져오신 한복을 입으셨는데, 모두들 한복이 너무 아름답다며 칭찬하셨다. 뷔페식 저녁이 있었고, 댄스파티를 밤늦게까지 했다. 부모님께서 다음날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 하셨기에 먼저 자리를 떠야 했지만, 정말 재미있는 밤이었고, 호스트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고 포옹을 할 때는 정말 짠했다. 엄마 눈은 흥건히 젖어 있었다.  

이렇게 시끄러웠던 부모님과의 일주일은 끝이 났다. 어머니께서는 떠나기 전 힘들게 일찍 일어나셔서, 내 아침으로 잡채와 불고기, 떡볶이 등을 만들어 놓으셨다. 우린 마지막으로 기도를 했고, 가방을 차에 실었다. 해가 뜨지도 않은 이른 아침, 어둑어둑한 밤길로 부모님을 태운 차가 사라졌다. 떠나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며 솔직히 조금 눈물을 흘렸다. 사실 그동안 정말 보고 싶었고,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두 분인데 일주일 동안 너무 투정만 부리고, 어리광만 피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 그런 내가 왠지 미웠다. 조금 더 잘 해드렸어야 했는데. 나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은 내가 무엇을 해도 보답할 수 없나 보다.

LA에서 하루를 더 보내시고, 한국에 도착하신 아버지께서 나에게 전화를 거셨다. 무사히 도착하셨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전화를 끊고 속으로 말했다. 사랑합니다!

-May 22, 2010